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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98
한자 朝鮮小作人相助會 大邱支會
이칭/별칭 소작인상조회[대구],조선소작인상조회[대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 4월 18일연표보기 - 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0년대 - 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 소멸
성격 친일 단체|농민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설립된 조선소작인상조회 소속 지회인 친일 단체.

[개설]

일제의 식민 농업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적극적으로 소작쟁의를 일으켜 생존권 투쟁을 이어 나갔다. 또한 3·1운동 이후 각종 농민운동 단체가 결성되면서 소작농 보호, 친일 지주에 대한 성토, 소작료 인하, 상호부조, 노동야학 운영 등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연합하여 노농회, 노농연합회, 노동회 등과 같은 지역 연맹체를 결성하였고, 노동자들만의 조선노농총동맹 등과 같은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일제는 농민운동을 약화, 분열시키고 농촌사회를 통제하고자 친일 인사를 앞세워 1921년 8월 27일 조선소작인상조회를 설립하였다. 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朝鮮小作人相助會 大邱支會)는 1922년 4월 18일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는 지주와 소작인의 융화를 도모하여 소작쟁의를 미연에 방지하고, 소작인의 항일 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21년 8월 27일 송병준, 송종헌, 이만승, 채기두, 안국선 외 20명은 조선소작인상조회를 설립하였다. 조선소작인상조회 경성본회 소속 간부 채기두, 윤익선, 정영윤 등은 1922년 3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1923년 5월까지 전국에 약 110개의 지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경상북도에는 대구, 예천, 의성, 영천 순으로 조선소작인상조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조선소작인상조회 지도부는 주로 친일파로 구성되었지만 평의원은 친일파, 지방 지회의 지회장, 실력양성론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지방 지회에는 주로 지역의 중소 지주나 대지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30년대 들어 농민운동과 노동운동 단체의 연합체인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면서 조선소작인상조회의 존립 기반이 약하여졌다. 조선소작인상조회는 소작인의 상조회라는 미명 아래 소작인을 착취하고 선동하여 일제에 협력하다가 1930년대에 소멸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소작인상조회는 소작 단체 조직 장려, 노·농민(勞·農民)의 권익 옹호, 소작인 교양강좌 개설, 농업 개량 장려, 부업 장려 등을 목표로 활동하면서 소작농의 권익과 생존권을 보호하는 단체로 보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설립자를 비롯한 회원들이 주로 친일파와 중소 지주, 대지주들이었던 조선소작인상조회는 소작농보다는 자신들의 이익 옹호에 더 적극적이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에 지주의 이익을 위한 소작 단체 증설을 유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선소작인상조회는 1924년 경성호텔에서 국민협회(國民協會), 유민회(維民會), 노동상애회(勞動相愛會), 조선경제회(朝鮮經濟會), 교풍회(矯風會),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 대정친목회(大正親睦會), 동민회(同民會), 청림교(靑林敎), 동광회(同光會) 등 10개 친일 단체와 각파유지연맹선언식(各派有志聯盟宣言式)을 거행하고 조선소작인상조회를 “독립사상과 사회주의를 공격하며, 조선총독부를 원조하는 친일 단체”라고 단체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지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소작인상조회 대구지회는 친일 단체를 앞세워 농민운동·노동운동·항일 의식을 분열·약화시킨 일제의 친일파 활용 양상을 엿볼 수 있는 단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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