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49 |
---|---|
한자 | 大邱 旭水洞 遺跡六 |
영어공식명칭 | Daegu Uksu-dong Yujeok2|Archaeological Site 2 in -dong, Dae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390-2|욱수동 391-2|욱수동 392-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11월 17일~1998년 1월 7일 - 대구 욱수동 유적6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3월 18일~5월 22일 - 대구 욱수동 유적6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4월 6일~5월 21일 - 대구 욱수동 유적6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원소재지 | 대구 욱수동 유적6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390-2|391-2|392-2 |
성격 | 생활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욱수동 유적6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세 차례에 걸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생활 유적이다. 먼저 우일교통 차고지 신축을 앞두고 1997년 11월 17일부터 1998년 1월 7일까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391-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竪穴遺構) 4기, 고상(高床) 건물터 2기, 도랑 2기, 기둥구멍 108개가 확인되었고, 굽다리접시[高杯],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연질바리[軟質鉢] 등 3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로, 건물 신축을 앞두고 2002년 3월 18일부터 2002년 5월 22일까지 욱수동 390-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3기, 고상 건물터 4기, 기둥구멍군 1기가 확인되었고, 토기류, 토제품, 철기류 등 6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세 번째로, 건물 신축을 앞두고 2004년 4월 6일부터 2004년 5월 21일까지 욱수동 392-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3기와 고상 건물터 11기, 기둥구멍군 4기가 확인되었고, 굽다리접시, 뚜껑, 짧은목항아리 등의 토기류 31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욱수동 유적6이 자리 잡고 있는 욱수동은 성암산[472m]과 안산[470m] 사이 골짜기를 침식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선정과 선앙 부분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어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욱수동 유적6도 대구 고산 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대구 욱수동 유적6이 자리 잡은 곳은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인데, 고산 선상지의 선앙 부분에 해당한다. 주변으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다수 조사되었고, 동쪽 욱수천 건너편 낮은 언덕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Ⅰ과 욱수동·옥산동 토기 가마터가 있으며, 서쪽의 언덕 비탈 지역에는 노변동 고분군이 있다.
[형태]
대구 욱수동 유적6에서 3회에 걸쳐 조사된 삼국시대 생활 유구는 수혈유구 10기, 고상 건물터 17기, 도랑 2기, 기둥구멍군이다. 수혈유구는 대부분 부정형을 띠며, 바닥면 요철이 심하여 주거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주목되는 것은 고상 건물터인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형태와 정면 2칸, 측면 3칸의 형태가 대부분이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형태도 함께 확인된다. 대구 욱수동 유적6은 대구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의 남쪽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치우쳐서 고상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가까운 서쪽 에서 조사된 욱수동 388번지 유적의 고상 건물터와 더불어 남북 방향으로 길게 무리를 이루며, 시지지구 생활 유적의 고상 건물터 2군에 포함된다. 북쪽에 잇닿아 발굴 조사된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 유적Ⅱ에서 확인된 고상 건물터 1군과 연결되어 남북 방향으로 고상 건물터 무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상 건물터 서쪽의 언덕 비탈면에는 삼국시대 노변동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고분군과 고상 건물터와의 사이에는 너비 20m 정도 공터가 확인되었는데, 고상 건물터 무리가 있는 생활공간과 고분이 조성되는 무덤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현황]
3회에 걸친 대구 욱수동 유적6 발굴 조사가 마무리된 후 신축건물이 조성되었다. 서쪽과 북쪽, 동쪽 대부분 지역이 도로 조성,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남동쪽과 남쪽의 경작지로 이용되는 부분에는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의의와 평가]
대구 욱수동 유적6은 3회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의 고상 건물터 2군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고상 건물터는 서쪽으로 노변동 고분군이 근접하여 있고 동쪽으로 욱수천 너머 언덕에 토기 가마가 자리 잡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토기의 생산·공급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하여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