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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동창 모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30103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설월리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대로 맞은편으로 보면 서면초등학교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초등학교지만 역사로 말할 것 같으면 광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927년 3월에 서면공립보통학교로 출발한 서면초등학교는 그동안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초창기 졸업생은 이미 작고했거나 생존해 있다면 이미 아흔 살은 훨씬 넘었을 것이다.

소하2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주민들은 대부분 이 서면초등학교를 다녔다. 설월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은 모두 서면초등학교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서면초등학교설월리 노인들이 살아온 한평생과 평행을 이루며 연계되어 왔다. 노인들은 서면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들의 자식들 역시 서면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손자들이 서면초등학교 다니고 있다. 노인들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어 축구대회를 할 때도 마을 앞에 있는 서면초등학교 운동장을 이용했다. 그들의 추억 속에 담겨 있는 서면초등학교는 그들 고향의 일부분인 셈이다.

[서면초등학교 18회 졸업생 김정관 씨]

한평생을 설월리에서 살아온 김정관[1932년생] 씨를 만났다. 귀가 조금 어두워서 큰소리로 말해야 되지만 총기가 있어 대담을 하는 데 어려움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정관 씨는 서면초등학교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서면초등학교 18회 졸업생이다.

설월리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설월리에서 거주해 왔다.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였다. 1940년대 초반은 일제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고무신이나 운동화가 없었다. 짚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고, 비가 오면 나막신을 신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운동화를 신었던 적이 있다. 일제가 싱가포르를 침략하여 승리했다고 학생들에게 운동화를 나누어 준 것이다. 짚신을 신는 어린이에게 안겨진 운동화,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당시에는 책가방도 없었다. 시장에서 판매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 당시에 초등학교는 시험을 쳐서 학생을 뽑았다. 면접시험을 쳤는데 시험에 떨어지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시험에 떨어져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김정관 씨 6남매 중에 3명은 초등학교를 다녔으나 위로 세 분 누님은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학교 등록금도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김정관 씨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설월리 학생들은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당시에는 광명 지역에서 유일한 초등학교였기 때문에 멀리서도 학생들이 왔는데,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는 학생도 있었지만 점심을 굶는 학생도 많았다. 당시에는 농업 생산량이 적어서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수확량이 적기 때문에 다들 가난했다. 초등학생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땔감 장만이나 풀베기 등 각종 일들을 해야 했다.

현재 설월리 ‘수수미가든’이란 음식점 옆에 일본 신사(神社)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무슨 기념일이 있거나 행사가 있을 때는 선생들이 초등학생들을 이끌고 신사 앞에 와서 의식을 거행했다. 특히 당시에는 선생들은 한국 사람이 많았지만 교장 자리는 반드시 일본인이 맡았다고 한다. 교장 선생은 학교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면 반드시 동쪽을 보고 절을 하게 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신국(神國)이라고 하며 일본이 있는 방향을 보고 절을 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마자 주민들이 신사로 몰려가 때려 부수었다.

김정관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설월리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5남매를 두었는데, 자녀들 모두 서면초등학교를 다녔다. 큰아들이 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는 책가방도 나왔고 고무신도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은 짚신을 신거나 보자기에 책을 싸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 자녀들이 모두 외지에 나가서 거주하기 때문에 서면초등학교를 다니는 손자는 없다.

김정관 씨는 매년 2회 모임을 가지는 서면초등학교 18회 졸업생 동창회에 나간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동창들도 많아 10여 명밖에 모이지 않지만 모임에 가면 늘 즐겁다. 지난날 짚신을 신고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갈생[땅에 금을 그어 구역을 설정하고 두 패로 나뉘어 ‘공격’과 ‘수비’를 정해 벌이는 놀이]’을 하던 추억,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여학생에게 몰래 다가가 고무줄을 자르던 추억. 그런 수많은 추억들을 더듬으며 동창회 모임은 늘 이야기꽃을 피운다. 코 흘리며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모두 노인이 되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면초등학교 24회 졸업생 지완규 씨]

지완규[1940년생] 씨는 네 살 때 충청도에서 설월리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는 서면초등학교 24회 졸업생이다. 24회 졸업생들은 현재 연 3회 동창회 모임을 가진다. 가을에는 1박2일 코스로 단풍놀이를 간다. 여름에도 한 차례 만나며, 봄에도 한 차례 만난다. 2010년 3월 17일에는 오후 5시에 안양의 어느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24회 졸업생들의 동창회 모임이 정례화된 것은 그의 나이 30대 초반 때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간헐적으로 만나다가 30대가 되면서 동창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정기적으로 동창회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정관 씨와 지완규 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서면초등학교 동문들은 동갑내기 동창들 모임을 가지고 있다. 반면 서면초등학교 총동문회는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총동문회 부회장을 오랫동안 맡아 보고 있는 최호진[1944년생] 씨에 의하면, 2006년까지는 한때 동문 체육대회도 개최되고 그런 대로 동문회의 맥을 이었으나 최근 2~3년 사이에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고, 총동문회의 회장단이 구성되지 못하는 등 동문회가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수년 전 유력 인사를 잘 섭외해서 총동문회장을 구했는데, 후배들의 불일치로 무산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호진 씨는, 총동문회는 여러 가지 여건상 활성화에 제약이 있지만 각 기수별 졸업생들의 동창 모임은 지금도 꽃을 피우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보제공]

  • •  김정관(남, 1932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 •  지완규(남, 1940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 •  최호진(남, 1944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전 광명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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