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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왕후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513
한자 仁敬王后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영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문집
관련인물 인경왕후|권유
편자 권유
저술연도/일시 1689년 이후연표보기
권수 1권
책수 1책
사용활자 필사본
가로 32.4㎝
세로 50.4㎝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관악로 1]

[정의]

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권유(權愈)가 개찬(改撰)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행적을 기록한 능지문(陵誌文).

[편찬/발간경위]

『인경왕후지(仁敬王后誌)』는 원래 조선 후기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1661~1680]가 죽은 다음해 익릉(翼陵)에 장사지낼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제진(製進)하였다. 그런데 1689년 송시열이 숙의장씨의 아들[훗날의 경종]을 세자에 책봉해서는 안 된다는 소를 올렸다가 화를 당하자 당시 예문관대제학으로 재직하던 권유가 개찬한 것이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형태]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32.4㎝, 세로 50.4㎝이다.

[구성/내용]

앞부분에는 인경왕후의 가계를 밝힌 뒤, 왕후의 덕성이 온공 장중하며 예의범절에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여 모든 이의 우러름의 대상이라 기술하고 있다. 이어 10세 때인 1671년(현종 12) 세자빈에 책봉되고, 1674년(숙종 즉위년) 숙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진봉되었음을 밝혔으며, 죽은 뒤에 ‘시인복의일인 숙야경계왈경(施仁服義曰仁 夙夜儆戒曰敬)’이라 하여 ‘인경(仁敬)’이란 시호가 내려지고, 다음해 2월 22일 경릉[고양] 안 언덕에 장례를 치르고 능호를 익릉이라 하였다는 것을 밝혔다. 끝에는 지문(誌文)의 개찬 경위가 밝혀져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조선 왕조에서 왕비를 뽑는 절차와 왕조 여인의 이상적 전형은 물론이고, 왕가의 장례 풍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보존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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