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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467
한자 忠賢書院址
영어공식명칭 Site of Chunghyeonseowon
이칭/별칭 삼현사(三賢祠),충현사(忠賢祠)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1084[오리로347번길 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7월 29일연표보기 - 충현서원지 경기도 기념물 제80호 지정
문화재 지정해제 일시 2010년 7월 16일연표보기 - 충현서원지 경기도 기념물 지정해제
성격 서원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658년연표보기
지정면적 450㎡
소재지 주소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1084[오리로347번길 5-6]
소유자 충현문화재단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개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역대 명현을 모시고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함께 지닌 지방의 사설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재 양성과 유교적 향촌 질서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원은 붕당의 정치적 이해를 지닌 역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1865년(고종 2)부터 흥선대원군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서원의 강제 철폐령을 내렸고, 이에 47개의 대표적인 서원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충현서원 역시 이 시기에 함께 철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 은퇴해 살면서, 처음에는 이곳 금천현의 촌로들과 상의하여 강감찬과 서견을 기리는 이현사(二賢祠)를 세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 1658년(효종 9)에 이 고장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면서 이원익도 함께 배향하여, 삼현사(三賢祠)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1676년(숙종 2) 왕이 사액(賜額)을 하였다 이후 정조 때 사액서원으로 충현서원이 건립되었고, 1856년(철종 7)에 개축되었다.

현재 서원 건물은 없어지고 주춧돌 일부만 남아 있다. 충현서원이 위치했던 지역은 이원익의 구택이 있던 곳으로, 서원 터 아래에는 ‘탄금암(彈琴岩)’이라는 글씨가 있는 바위가 있으며, 이전에는 관감정(觀感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위치]

광명시 소하동 소하삼거리에서 남쪽 안양 방향으로 500m 정도 지나 소하공영주차장 앞에서 우회전을 하면 윤정하이빌이라는 연립주택을 끼고 충현서원지가 나온다. 충현서원지 내에 충현박물관 등이 함께 있으며, 도로 가에서 골목길은 6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현황]

현재 민가 형식으로 지어놓은 기와집 건물 바깥채에는 관감당(觀感堂)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다. 관감당 뒤편에는 이원익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17세기경에 건립되었다는 오리영우(梧里影宇) 1동이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2칸의 작은 건물이다. 서원 터에는 예전에 강당 터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함께 초석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후손들이 복원 사업을 하면서 위쪽으로 삼상대(三相臺)와 풍욕대(風浴臺)를 건립하였다. 충현서원지는 1985년 6월 28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왔으나, 2010년 7월 16일 경기도 기념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의 공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오리 이원익을 배향했던 서원지이다. 주변에는 이원익의 유품과 정신을 기리는 전시관이 함께 있어 이원익의 숭고한 정신과 사상을 잘 간직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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