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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383
한자 露日戰爭
영어의미역 Russo-Japanese War
이칭/별칭 노일전쟁,일로전쟁,일아전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안홍민

[정의]

1904년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농민 항쟁의 한 원인이 된 일본과 러시아간의 전쟁.

[개설]

러일전쟁은 1904년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싸움으로서, 2차 시흥농민봉기의 한 원인이 된 전쟁이다. 이를 노일전쟁, 일로전쟁, 일아전쟁 등이라고도 한다.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의 준비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를 위협하여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고 극히 낮은 임금만을 지급하며 노동력을 징발하였다. 시흥 지역의 농민도 일본의 강제적 조치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결국 이는 광명 지역 출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제2차 시흥농민봉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개전 이후 러시아는 거듭 일본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함으로써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내부에서의 농민·노동자 등의 불만이 러시아 혁명으로 분출되어 제정러시아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05년에 접어들어서는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전쟁을 진행하기 힘들게 되었다. 결국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선으로 양측 간에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열려 9월 5일에 휴전 협약이 조인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침략 정책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었다.

[경과]

일본은 러시아에 대하여 1904년 2월 8일 개전과 국교 단절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8일에 뤼순에 위치한 군항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하였다. 개전 후 일본군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한일의정서의 체결을 강요하여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였다. 한일의정서 체결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간섭을 강화한 일본은 한반도에 병참 기지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은 병참 기지의 건설을 위하여 조선의 토지를 몰수하고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징발하였다. 이로 인해 각지의 농민들이 저항하였는데, 시흥[광명 포함]에서도 일본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마침내 1904년 9월 14일 제2차 시흥농민봉기를 일으켰다. 일본의 토지와 노동력 수탈에 반발하여 일어난 시흥농민봉기는 반식민지적 저항 운동이었지만 일본군의 개입으로 인해 결국 진압되고 말았다.

한편 일본은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듭하면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갔고,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을 통하여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에서도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였다. 러시아는 육전에서의 거듭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하여 발틱함대를 동원하여 대한해협에서 일본 해군과 대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도고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함대에게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함으로써 사실상의 전세는 일본 측으로 기울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러일전쟁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전쟁은 광명 지역의 많은 농민들이 일본에 저항한 2차 시흥농민봉기의 중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광명시를 포함한 시흥 지역의 항일운동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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