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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367
한자 漢城州
영어음역 Hanseo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김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667년[문무왕 7, 추정]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667년[추정]

[정의]

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백제를 멸망시킨 후인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은 667년(문무왕 7) 무렵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 유민의 저항을 진압하고 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좀 더 효율적으로 군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한산주 치소를 한성(漢城)으로 옮겨 한성주(漢城州)를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문무왕 8년 6월 22일 조에 “인문(仁問)·천존(天尊)·도유(都儒) 등은 일선주(一善州) 등 7군 및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영으로 나아갔다.”, 문무왕 10년 12월 조에 “한성주총관 수세(藪世)가 백제의 □□□□□□을[를] 취하고 저쪽으로 가려다가 일이 발각되어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서 목 베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무왕 11년 조에 “건봉(乾封) 2년에 이르러 대총관(大摠管) 영국공(英國公)이 요동(遼東)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한성주에 가서 군사를 국경으로 보내서 모이게 하였습니다.”, “[건봉 3년] 5월에 유우상(劉右相)이 와서 신라의 군사를 징발하여 함께 평양(平壤)으로 갔는데, 나도 또한 한성주에 가서 군사들을 검열하였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의 경우 주(州)는 중요한 군사적인 거점으로서 정(停)을 설치하고 군주(軍主)를 파견하였다. 주의 위치는 신라의 대외 팽창 결과와 관련하여 자주 바뀌었고, 그때마다 주의 명칭도 변화하였다. 이것은 당시 대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변천]

667년경 무렵에 일시적으로 한산주를 옮겨 한성주를 설치하였다가 삼국 통일 이후 한성주를 다시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성주는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할 때 9주의 하나가 되었고, 757년(경덕왕 16) 한주(漢州)로 개칭되면서 북쪽의 발해(渤海)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성주는 삼국 통일 전쟁 중인 667년 무렵 백제 유민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또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치소를 일시적으로 한성으로 옮기면서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광명 지역도 한성주에 포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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