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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129
한자 佳樂-
영어의미역 Garakgol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가구수 약 10가구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명칭유래]

정선전씨 문중에 따르면, 마을에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나무 ‘추(楸)’자를 써서 추동(楸洞) 또는 가래골이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가락골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전주이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이후 분성김씨가 들어와 정착한 마을이다. 1964년 시흥군 서면 노온사1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가 되면서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1통 1반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가락골은 원래 빈촌이었는데 마을 서쪽에 임하군 전응조(全應祚)[1522~1612]의 숭모단과 전응조의 아들로 임진왜란 이후 호성공신 3등으로 책봉된 석릉군 전용(全龍)의 묘를 조성한 뒤부터 마을이 번성했다고 한다.

[자연환경]

도덕산이 동쪽·남쪽·북쪽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안 동쪽 도덕산 줄기에 가락고개가 있어 과거에는 이 길을 통해 하안동철산동으로 넘어가곤 하였다.

[현황]

광명로밤일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지나 변전소를 지나면 가락골이다. 본래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점차 외지로 나가 현재 10여 가구만이 남았다. 마을 입구와 마을 안쪽에 각각 20여 동의 비닐하우스를 조성하여 농작물을 재배하고, 마을 안쪽 소방도로를 따라 대형 음식점과 우리밀 대형 물류 창고가 들어서 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주택들이 일부 남아 있지만 조립식 창고나 소규모 공장 건물로 이용되고 있는 곳도 많아 기존의 자연마을 모습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 1981년 마을 앞으로 광명~안산 간 도로가 개통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정선전씨의 도시조인 전응조가 선조를 업고 피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락골 일대를 하사받은 사실이 비석에 새겨져 전해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실되어 확인할 길이 없다. 1990년 마을 서쪽에 전응조의 단을 세워 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전용 묘가 있다. 1997년에는 전용 신도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1936년 의친왕 이강(李堈)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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