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후반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명인 금천(衿川) 일대를 그린 고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47.8㎝, 세로 34.5㎝이다. 우측 상단에 ‘금천’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금천지도(衿川地圖)」는 고을의 규모가 작은 관계로 수록된 내용도 매우 소략하다. 고을의 진산인 삼성산(三聖山)과 금지산(衿之山)이 표기되어 있고, 읍치를 중심으로 왼쪽에 서면(西面)이 있고, 오른쪽에...
-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남평문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개항기 효정각(孝㫌閣)에 대한 기문. 「남평문씨 효정각기(南平文氏 孝旌閣記)」는 1875년(고종 12) 한익철(韓翊徹)이 남평문씨 문채룡(文采龍)과 그 아들들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정각에 대해 쓴 글이다. 「남평문씨 효정각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남평문씨의 가계를 정리하고 벌열(閥閱)이었음을 강...
-
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의 도로·철도 등의 기반 시설을 표시한 약도. 재질은 한지이며, 도면 크기는 가로 79.7㎝, 세로 52.4㎝이다. 전체적으로 도로와 철도 그리고 수계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부군계(府郡界), 국도(國道), 면계(面界), 삼등 도로(三等道路), 도로, 하천, 철도, 정거장, 군청, 동리(洞里), 면사무소, 우편국, 경찰...
-
1871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5개 군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경기읍지(京畿邑誌)』는 총 6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판심은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며,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광(半匡)은 22.4×15.3cm이며, 계선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읍지의 크기는 30×...
-
1842~1843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3개 군과 영종진(永宗鎭)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경기지(京畿誌)』는 총 4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으로 판식은 사주단변의 형식이며, 반광은 22.8×16.4cm 크기에 경계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30.3×20.3cm 크기이며, 표제는 ‘경기지(京...
-
2008년 경기도 광명시에서 광명동과 철산동의 1970~1980년대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정리한 동지(洞誌). 『광명·철산동지』는 2008년 12월 24일 광명시청 문화체육과에서 발행하였는데, 간기에 따르면, 광명시청 학예연구사 양철원 및 민성혜가 조사 및 책임 편집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1책으로, 표제는 ‘광명·철산동지(光明·鐵山洞誌)’이다. 먼저 앞부분에는 광명시장과 광명시...
-
1993년 경기도 광명시에서 시 승격 12주년을 맞아 광명시의 각 분야 자료를 집대성한 최초의 시지(市誌). 광명시에서는 『광명시지』[1993]를 편찬하기 위해 먼저 고문,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상임위원, 간사, 서기 등으로 편찬위원을 구성하였다. 먼저 고문은 심정수(沈正洙)[지방행정동우회장], 위원장은 오성수(吳誠洙)[광명시장], 부위원장은 경의현(慶義顯)[광명시 부시장]과...
-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군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광여도』「경기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군현의 위치와 산맥, 수계, 진보(鎭堡)와 찰방역(察訪驛)을 확인할 수 있고, 왕릉의 위치와 서원의 표기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산지의 묘사는 전통적인 연맥식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하계망은 한강의 본류...
-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해동지도( 海東地圖)』「금천현(衿川縣)」과 마찬가지로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산지는 연맥식을 가미하면서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안양천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도림천이다....
-
조선 후기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55.0㎝, 세로 55.0㎝이다.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정상기(鄭尙驥)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정후조(鄭厚祚)가 수정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1678~1752]가 조선 영조 때 제작한 『동국지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도면에 그려져 있지만...
-
19세기 전반 광명 지역이 시흥으로 표기된 전국 고지도. 『동여(東輿)』의 제작 시기는 함경도의 후주부(厚州府)가 처음 설치된 1822년(순조 22) 이후, 장진부(長津府)가 첨사진(僉使鎭)으로 변경되는 1843년(헌종 9) 이전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첩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같이 절첩장(折帖裝)으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지도의 윤곽으로 볼 때 정상기(鄭尙驥)의 『동국대전...
-
1932년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가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 8개 리의 역사와 문화 등을 조사하여 간행한 향토지. 『서면향토지(西面鄕土誌)』는 시흥군 최초의 초등학교인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 교장 기타야마 와카니치[北山若二]가 당시 시흥군 서면의 소하리, 하안리, 철산리, 광명리, 노온사리, 가학리, 박달리, 일직리 등 8개 이(里)의 향토사를 조사하여 발간한 향토...
-
2007년 경기도 광명시에서 소하동과 일직동의 역사와 오늘의 모습을 정리한 동지. 광명시는 2004년에 KTX 광명역사가 개통된 이래 소하동 지역과 일직동 일대 역세권 개발 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신촌지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소하동지(所下洞誌)』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이 지역의 역사, 전통적인 마을 제의와 민속자료, 자연마을의 유래 등을 정리하여 기록물로 남기기 위해 광...
-
1899년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에서 편찬한 읍지. 『시흥군읍지(始興郡邑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이 존재하는데, 전자는 초고본이고 후자는 정서본(精書本)이자 선본(善本)으로 판단된다. 첫째, 표지를 살펴보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은 ‘광무삼년 십이월(光武三年十二月)’로 되어 있고,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
1757~177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 중 경기도 군현이 그려진 지도. 『여지도』「경기도」는 1757년(영조 33)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의 홍릉(弘陵)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얻게 된 서오릉(西五陵)이 고양 지역에 표시되어 있고, 평안도의 이산(理山)이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1757년 이후부터 1776년(영조 52) 이전에 제작된 지...
-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광명시의 전신인 시흥군의 인문 정보를 포함한 전국의 지명(地名)과 지지(地誌) 사항을 작성한 자료. 광명 지역의 일제강점기 지명인 시흥군은 동면(東面), 서면(西面), 남면(南面), 상북면(上北面), 하북면(下北面), 군내면(郡內面) 등의 5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의 경기도 시흥편은 위 5개 면의 기본 정보를 다른...
-
2007년 경기도 광명시에서 하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동지(洞誌). 『하안동지』는 1914년 3월 1일 시흥군 서면 하안리로 행정 구역이 개편된 시기부터 1995년 3월 6일자로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 하안4동으로 분동된 하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였다. 특히 하안동 지역의 주요 인물의 구술 자료를 토대로 근대와 현대의 모습을 수록한 점이 특징적이다. 하안동은 19...
-
1999년 광명문화원에서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동지(洞誌). 『학온동지(鶴溫洞誌)』는 독자적인 발간물이라기보다 광명문화원에서 매년 발간하는 잡지인 『광명문화』 6호의 형태로 1999년에 간행한 것으로, 광명시와 경기문화재단의 ‘역사기록 문화창달사업’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1책으로, 표제는 ‘학온동지(鶴溫洞誌)’이다. 앞부분에 광명문화원장 정원조의 간행사가...
-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가로는 47.5㎝, 세로는 30.0㎝이다. 『해동지도』「금천현」은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그렸다. 산지는 회화식 기법을 가미하여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에는 고을 이름과 향교만이 글자로 표기되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면이나 마을 이름이 거...
-
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고조할아버지는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강숙돌(姜叔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격서참봉(昭格署參奉) 강뢰(姜賚)이며, 할아버지는 삼등현령(三登縣令) 강유경(姜惟慶)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姜燦)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廣州金氏)이며, 외할아버지는 첨지(僉知) 김은휘(金殷輝)이다...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자양(子讓). 증조할아버지는 강양(姜揚)이고, 할아버지는 강비웅(姜非熊)이며, 아버지는 강희(姜曦), 부인은 성홍령(成洪齡)의 딸이다. 외할아버지는 성복동(成福仝)이다. 증손자로 여주목사를 지낸 강찬(姜燦)이 있다. 강숙돌(姜叔突)[?~1515]은 1492년(성종 23)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과 의금부도...
-
경기도 광명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와 개항기에 제작된 지도. 광명 지역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정(南征)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이 되고, 고려 전기로 들어서며 금천현(衿州)에 소속되었다. 조선이 들어선 후인 1414년(태종 14)에는 과천(果川)과 합해져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훗날 분리...
-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병조참의 구춘보(丘春甫)이다. 아들로 사헌부대사헌 구치곤(丘致崑)과 조카 구종직(丘從直)이 있다. 구차숭(丘次崇)은 1442년(세종 24) 영해부사(寧海府使)를 거쳐 1451년(문종 1)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하였고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옛 시흥군 서면 가학...
-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증조할아버지는 구천우(丘天雨)이고, 할아버지는 구춘보(丘春甫)이며, 아버지는 구차숭(丘次崇)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윤(金贇)이다. 부인은 조후지(趙厚之)의 딸이다. 동생으로 구치강(丘致崗)을 두었다. 구치곤(丘致崑)은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문과(式年文科) 정과(丁科)에 급제한 뒤 1479년(성종 10...
-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퇴보(退甫), 호는 하계(霞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지 권형(權詗)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권약(權若)이며, 할아버지는 목사 권훈(權勛), 아버지는 권단(權偳)이다. 외할아버지는 정백형(鄭百亨)이다. 부인은 이행원(李行源)의 딸이다. 권유(權愈)[1633~1704]는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병과 1인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오(仲悟). 증조할아버지는 권치(權錙)이고, 할아버지는 권식(權湜)이며, 아버지는 증좌승지 권침(權琛)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석보(金碩輔)이다. 부인은 변훈남(卞勳男)의 딸이다. 권형(權詗)[1541~1605]은 1568년(선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적을 두고 있던 중 처음으로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에 제수되었고, 다시 선...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시대 금천강씨 문중의 묘역. 금천강씨는 고려 창건 개국공신으로 삼한벽상공신이 된 강궁진(姜弓珍)이 태조왕건으로부터 본관을 금주로 하사받은 사성(賜姓)이다. 이후 금주가 금천(衿川)으로 지명이 변경되어 금천강씨가 되었다. 강궁진의 고조인 강여청(姜餘淸)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강궁진을 1세로 이어진다. 강궁진은 고려 명장 강감찬(姜邯贊)[948~10...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한(金仁漢)[1899~?]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일명 김거봉(金巨奉)이라고도 불렸다. 3·1운동이 확산될 당시인 1919년 3월 28일 밤, 노온사리(老温寺里) 경찰주재소에 강제 구금된 이정석(李貞石)을 구출하는 사건과 관련하여 일제에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남평문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발급받은 교지. 남평문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교지는 모두 6종으로, 문채국(文采國)·문덕표(文德杓)·문채룡(文采龍)·문달현(文達鉉)·문진휴(文鎭休)와 관련된 것과 김기홍(金基弘)의 것이 있다. 이중 김기홍과 관련된 교지가 남평문씨 문중에서 전해 오는 이유는 자세하게 전하지 않는다. 먼저 1844년(헌종...
-
17세기 후반 광명 지역 일대를 이해할 수 있는 32여 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첩. 『동여비고(東輿備考)』는 제목의 뜻으로 보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이용하는 데 참고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람도(東覽圖)』 보다는 훨씬 자세하다. 또한 조선 후기에 제작되는 도별도(道別圖)나 군현도(郡縣圖)와는 달리 도별도와 군...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공세골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유씨 문중의 묘역. 문화유씨 묘역에는 유성구(柳聖龜) 등이 안장되어 있다. 유성구(柳聖龜)는 자가 원명(元明)이고 1620년에 출생하여 38세인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3등 26위에 입격하였다. 유경익(柳敬益)[1639~?]은 유성구의 아들로 자가 여숙(汝肅)이며, 35세인 1673년(현종 14) 진사에 2등 19위로 입격...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와 관련하여 안핵사(按覈使) 안종덕(安鍾悳)이 1904년(고종 41) 9월 4일에서 10월 8일까지 주모자와 관련자들을 심문 조사하여 10월 11일 황제에게 보고한 61장의 공초(供招)는 『시흥직산안핵사주본(始興稷山按覈使奏本)』으로 정리되었다. 1905년 4월 17일 처리된 판결문은 『대명률(大明律)』과 『대전회통(大典會通)』의 법조...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김녕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金應壽)와 그의 후손들이 받은 교지 등의 고문서. 분성군(盆城君) 김응수[1567~?]는 임진왜란 당시 마의(馬醫)로 선조를 호종한 인물로 사복시이마(司僕寺理馬)의 신분에서 동반(東班)의 반열에 오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604년(선조 37)에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도 선조의 신임으로 호성공신 3등에...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경모재에 모신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홍서(弘瑞),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창덕궁(昌德宮) 직장(直長)을 지낸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申叔舟)의 고모이다. 설계조(薛繼祖)[1418~1486]는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茅亭里)에서 태어났다. 25세인 1443년(세종 25) 무과에 급제하였다. 1453년(단...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성기석(成基錫)[1920~1990]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면서 군수를 지낸 성종영(成鍾永)의 5세손이다. 성기석은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에 기술직으로 근무할 때 단파수신기(短波受信機)를 제작하여 해외 방송을 청취하면서 아버지를 통하여 이인(李仁)과 조병옥(趙炳玉) 등에게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성우경(成禹慶)[1842~1916]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시흥군 남면 유등리[현 광명시 학온동]에서 태어났다. 시흥군 남면 동학(東學)의 집강(執綱)으로 활동하면서 1898년(고종 35)과 1904년(고종 41) 두 차례에 걸쳐 다른 집강들과 함께 이른바 시흥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차 시흥농민봉기는 일본의 침략과 간섭이 노골화하던 1898년...
-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지호(柳志浩)[1892~1977]는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에 사는 이정석(李貞石) 등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노온사리(老溫寺里) 경찰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3월 28일 최호천(崔浩天)·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 등과 같이 이정석을 구출하고자 군중 500여 명과 함께 노온사리...
-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의병(尹宜炳)[1900~196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때 최호천(崔浩天)과 함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격렬하여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에 돌아와 청년들과 독립 운동을 계획하여 이끌었다. 그리하여 소하리와 가리대리의 주민 200여 명을 지휘하며 1919년 3월 28일...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1차 시흥농민봉기는 1898년(고종 35) 7월 9일 시흥읍내에서 전 군수 문봉오(文鳳梧)의 가혹한 수탈과 불법 행위에 반발로 일어났다. 거사를 위해 주모자들은 7월 7일 사발통문으로 6개 면 42명의 집강에게 연락하여 9일을 기하여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집강의 인솔 아래 관내로 모이기로 하였다. 관아로 가서 전 군수 문봉오와 그를 방조한 전 향장 이...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조선 전기 광명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부(立夫). 태종의 첫 번째 왕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귀달(李貴達)이며, 아버지는 이진(李眞)이다. 어머니는 복주김씨(福州金氏)로 외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김구수(金龜壽)이다. 부인은 경상도병마우후(慶尙道兵馬虞候) 윤천수(尹天壽)의 딸이다. 이순신(李純信)[1554~1611]은 어릴 때부터 유업...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공신 이원익(李元翼)의 배향 교서. 「이원익 인조묘정 배향교서(李元翼 仁祖廟廷 配享敎書)」는 1651년(효종 2)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을 인조의 묘정에 배향한다는 내용의 효종이 내린 교서다. 인조와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발탁함으로써 흉흉한 인심을...
-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 이월봉(李月峰)[1915~1977]의 본적지는 시흥군 서면 철산리 55번지[현 광명시 철산동]이나, 보훈처의 기록에 의하면 출생지는 황해도 황주인 것으로 보인다. 1939년 9월 서안(西安) 한국청년전(韓國靑年戰) 때 공작대(工作隊)에 입대하였다. 1940년에는 서안의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5지대(支隊)에 입대하였다. 1941년 중국전(中國戰) 때는...
-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원(李宗遠)[1864~194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이원중(李元仲) 또는 이종운(李鐘雲)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7일 밤 아들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순사보 최우창 등에게 체포되어 노온사리(老溫寺里)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이 사실을 같은 동네의 청년 최호천(崔浩天)·윤의병(...
-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남항거사(南港居士)이다. 세종의 다섯 번째 왕자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한(李漢)이고, 할아버지는 이인건(李仁健)이며, 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다.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로 문정공(文貞公)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부인은...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황제의 통치권이 크게 손상되었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따른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의병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장원겸(張元謙)[1866~?...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녕군파 후손이 받은 교지.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셋째 부인인 군부인(郡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의 묘소가 광명시 소하동[옛 소하리 마산(馬山) 삼석봉(三石峯) 아래]에 들어서면서 이곳은 군부인 조씨 소생 후손의 선산이 되었다. 이후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전주이씨 익녕군파 문중의 묘역. 전주이씨 묘역은 이원익(李元翼)의 종손인 이승규[전 연세대학교 의대교수]가 이원익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묘역에 그의 선조와 후손의 묘소를 이장하여 조성한 묘역이다. 여기에는 이원익의 묘소를 비롯하여 이정은(李貞恩), 이의전(李義傳), 이수약(李守約), 이증현(李曾賢), 이상현(李象賢), 이존도(李存道), 이인복(李仁復...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동만의 묘갈.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右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정계순(鄭啓淳)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순조 7) 의영...
-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광명시 향토행정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원용(鄭元容)에게 발급된 교지. 경산(經山) 정원용[1783~1873]은 1824년(순조 24) 아버지 정동만(鄭東晩)의 묘소를 현재의 광명시 학온동으로 이장하면서 이 일대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그 뒤 정원용 자신은 물론이고, 1970년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이장하기 전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문신 정원용의 묘소. 정원용(鄭元容)[1783~1872]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를 거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응교, 이조참의,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831년 동지사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예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중추부판사가 되었다가 1848년 영...
-
경기도 광명시 창녕성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성학조(成鶴祚)와 성하경(成夏慶)이 발급받은 교지. 창녕성씨 교지는 성학조와 관련된 교지 1점과 성하경[1823~1899]과 관련된 교지 34점 등 총 3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학조의 교지는 1822년(순조 22) 성학조를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하는 교지로, 나이 90세가 되어 정식(定式)에 따라 가자(加資)...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있는 창녕성씨 문중의 묘역. 창녕성씨 묘역에는 성종영(成鍾永)[1827~1890], 성낙유(成樂游)[1865~1925], 성희경(成禧慶)[1884~1961], 성기석(成基錫)[1919~1990] 등 모두 4기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성종영은 돈녕부도정을 지낸 인물이다. 성기석은 성종영의 5세손인데,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 단파 사건을...
-
1834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지도로, 경기도 광명의 옛 지명인 시흥의 역사 지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전국 8도 주현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그린 첩(帖) 지도이며, 1판 1단의 길이를 동서 70리, 남북 100리로 계산해서 그린 획정지도(劃井地圖)이다. 이는 동서의 길이를 약 1,500리, 남북의 길이를 약 3,000리로 계산한...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는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개통된 경부선의 영등포~수원 간 공사에 강제 동원한 데 이어 토지를 대가 없이 수용한 일에 크게 반발하여 군민 2,000여 명이 항거한 사건이다. 1904년 9월 13일까지 6개 면 집강들에게 봉기 계획을 전달하는 한편, 시흥군의 모든 가구마다 한 명씩 반드시 집회에 참여하도록 하여 9월 14일 읍내...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주환(崔周煥)[1882~195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 사람인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자 3월 28일 밤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 등과 함께 이정석 구출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호천(崔浩天)[1899~196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21세로 소하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재학생으로 이곳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동네에 사는 이정석(李貞石) 등이 독립 만세 시위를 하다가 노온사리(老溫寺里)...
-
염형명을 시조로 하고 염공거·염백거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파주염씨(坡州廉氏)는 삼한공신(三韓功臣) 염형명(廉邢明)을 시조로 하고, 공민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곡성부원군(谷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1304~1382]을 중시조로 한다. 달리 서원염씨(瑞原廉氏)라고도 하는데, 파주의 옛 지명이 서원이기 때문이다. 문헌에는 파주 이외에 개성(開城), 광주(廣州),...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에 있는 조선 전기 평해구씨 문중의 묘역. 평해구씨 묘역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 뒷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방도 351호선과 지방도 397호선을 잇는 포장 소로와 바로 인접해 있다. 평해구씨 묘역에는 모두 4기의 무덤이 있는데, 구치곤(丘致崑)의 무덤을 중심으로, 우측 아래쪽에는 구차숭(丘次崇)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 1기가 있고, 위쪽으로 능선...
-
경기도 광명시의 홍천용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개항기 용재옥(龍載玉) 등이 발급받은 교지. 홍천용씨 교지는 4점의 교지와 진사시 답안지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871년(고종 8) 지구관(知彀官) 용재옥이 무과 병과 제3인으로 급제했다는 교지, 1850년(철종 1) 별무사(別武士) 용무채(龍武彩)가 무과 병과 제65인으로 급제했다는 교지, 1872년(고종 9) 별부료(別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