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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집 속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B020207
한자 喪輿-傳統文化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던 상여집]

아방리 상여집 은 옛날 우마차를 끌고 시흥에서 아방리[능말]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할 때 이 앞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상여집은 분명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이곳의 상여집은 사라지고 주변 일대에 아파트촌이 들어설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상여집의 마지막 모습을 글로, 또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서글픈 생각도 지울 수 없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이런 곳까지 훼손해야만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는데 집은 왜 자꾸 짓는 것일까.

상여집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꺼려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 시대 상여집은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건물이었다. 왜냐하면 마을에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지만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탄생하면 마을에는 축하의 인사가 오고가나 상례가 있으면 곡(哭)소리가 난다. 또 마을에는 시집오고 장가가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잔치로 마을이 떠들썩해진다. 그래서 한국인의 마을에는 어느 곳이라고 할 것도 없이 늘 혼례에 필요한 도구들과 상례에 필요한 도구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혼례에 필요한 족두리와 치마저고리, 사모, 관대, 가마 등이 마을 안에 보관되어 있는 반면 상례 도구를 보관하는 상여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이나 마을 어귀, 마을의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상여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마을 가까이에 위치하는 것을 꺼렸다. 상여집 하면 귀신을 생각하기도 하고 무섭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을 때는 담력을 기른다고 상여집으로 들어 보내는 코스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 한국인의 장례 풍습도 변해 간다. 그래서 이제 그 상여집도 점차 한국인의 마을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이웃과 함께 상여를 메고 「상여 소리」를 하며 죽은 자를 보내던 장례가 이제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제공하는 영구차로 바뀌면서 상여의 쓰임도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일생에 딱 두 번 탔다는 가마]

과거 민초들은 일생에 두 번 가마를 탔다. 한 번은 혼례 때, 또 한 번은 죽어서 꽃상여를 탔다. 상여에는 아름답게 수놓은 각종 장식물로 가득하다. 임금이 타는 연(輦) 못지않다. 죽어서 타고 가는 행렬에 대해서는 왕도 자비를 베풀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결혼할 때도 차를 타고 죽어서도 차를 탄다. 가마에서 차로 그렇게 우리의 이동 수단이 변했듯이 혼례와 상례의 운반 수단도 바뀌었다. 꽃상여에 타서 일가친척과 이웃들의 「상여 소리」를 들으면서, 울음의 뒤섞임 속에서도 해학과 축제가 묻어나는 그런 상례가 우리의 전통 상례라면, 이제는 상례가 가지는 축제적·놀이적 성향이나 공동체적 문화는 많이 상실되었다.

아방리 상여집은 한 칸 정도의 작은 집인데, 시멘트벽과 슬레이트지붕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70년대 후반에 지은 것으로, 그 전에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상여는 옛날부터 내려오던 오래된 상여가 있었으나 너무 낡아서 1990년대 초반 불에 태우고 새로 구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여의 쓰임이 별반 없게 되었다. 병원의 영구차가 그 구실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하는 아방리[능말]의 장례 문화]

그러나 이웃과 함께하는 아방리[능말]의 장례 문화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마을에 장례가 있으면 자신의 일처럼 서로 돕는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혼상계’가 있어 쌀을 모아 혼례나 상례를 치렀다. 2000년대로 들어와 구름산 주변 산에 산소를 쓰는 것이 금지되자 대다수의 주민들은 지방에 내려가 선산을 구입하였다. 그래서 요즘은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지방의 선산으로 내려가는데, 먼길이라도 주민들은 버스를 대절하여 그곳까지 가서 도와주고 온다.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아방리[능말] 주민들의 공동체 생활에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방리[능말]의 장례 풍속 하나를 소개해 본다. 아방리[능말]에서도 상을 당하면 대문 밖에 사자밥을 올리는데, 이때 대문 밖에 절구통을 놓고 그 위에 키를 놓고 키에는 사자밥 세 그릇, 동전, 신발을 올려놓는다. 이렇게 사자밥을 차려 놓는 방식은 성남시 운중동 등지에서도 행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또한 1980년 이전만 하더라도 장삿날 장지에서 돌아오면 상갓집에서는 망자의 천도를 비는 ‘자리걷이굿’을 하였다. 이러한 풍속도 경기 남부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일반적인 풍속이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민속이 되었다.

[정보제공]

  • •  양주옥(남, 1931년생, 노온사동 주민, 아방리 노인회장)
  • •  이재숙(여, 1932년생, 노온사동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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