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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리[능말] 터줏대감 금천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B010202
한자 阿方里-主大監衿川姜氏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2009년 현재 아방리[능말]의 세거 성씨로는 금천강씨김해김씨, 남원양씨를 들 수 있다.

남원양씨의 선산은 원래 제2경인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구름산 기슭에 있었으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지방으로 옮겼다.

김해김씨의 선산은 아방리[능말] 마을 공동묘지 옆에 있다. 남원양씨김해김씨아방리[능말]에 사당을 짓거나 독자적인 종친회 조직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아방리[능말]에서 그리 세력 있는 집안으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회빈 강씨의 친정 마을 아방리[능말]]

이제 아방리[능말]의 중심 세거 성씨인 금천강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1611~1646]는 아방리[능말] 출신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둘째 딸이다. 민회빈 강씨는 사사(賜死)되어 친정인 기와집골에서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구름산 기슭에 묻혔다.

민회빈 강씨의 아버지 강석기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아방리[능말]의 금천강씨들은 신라시대 사람인 강여청(姜餘淸)이 시조라고 한다. 강여청 이후 수대의 조상들이 실전되어 족보에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계보를 상세히 알기는 힘들다. 다만,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이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개국벽상공신’이 된 후 금천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는데, ‘금천’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옛 지명으로, 조선시대 아방리[능말]도 시흥군에 속해 있었다. 아방리[능말]에 처음 들어 온 금천강씨 입향조는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한성판윤을 지낸 강양(姜揚)이라고 전한다.

민회빈 강씨가 사사된 후 금천강씨는 멸족의 위기에 처해졌다. 그때 한 여종이 갓난아이였던 강후망을 업고 충청도 산골로 피신을 했고, 이후 그의 아들 강봉서가 성장한 후 조상의 무덤이 있는 아방리[능말]로 옮겨 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천강씨 22세손인 강봉서[1605~1682]는 선릉참봉을 지냈다. 그는 강석기의 증손으로, 아버지 강후망은 숭릉참봉을 지냈다. 강봉서는 선조의 무덤을 돌보며 아방리[능말]에 거주했고, 그 후 후손들이 새터말가운데말 등으로 분가하면서 번성했는데, 한강 이남 지역의 금천강씨 후손들은 대부분 강봉서의 후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금천강씨들은 민회빈 강씨가 사사되면서 역적으로 몰려 집안의 문서들이 모두 소실되면서 그 이전의 자세한 기록들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구름산 기슭에 자리 잡은 금천강씨 선산]

금천강씨 선산은 금천강씨 집안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물증이기도 하다. 금천강씨 선산은 크게 아방리[능말]의 애기능저수지[일명 노온사저수지] 위 구름산 기슭에 있는 것과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에 있는 것으로 대비된다.

구름산 기슭에 있는 금천강씨 선산은 이곳에 입향한 강양(姜揚)에서부터 강빈옥사 때 멸문지화를 당하기 전에 죽은 강석기의 무덤 등 총 30여 기가 자리 잡고 있다. 묘지 주변에는 문인석과 비석 등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그 웅장함만 보더라도 한때 세력을 떨치던 집안의 선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민회빈 강씨가 사사된 이후 이곳은 출입이 금지되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금했기 때문에 숙종 때 복원되기 전까지는 수풀에 싸여 있었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에 있는 금천강씨 선산은, 강빈옥사 이후 멸문지화를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현리에 가서 정착하면서 생성된 곳이다. 그곳에는 민회빈 강씨의 오라버니인 강문명과 강후망(姜後望) 등 그 후손들의 무덤이 있다.

금천강씨는 과거 아방리[능말] 주변의 산과 토지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집안이어서 마을 주변 임야 여기저기에 무덤을 썼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구름산에 묘지를 사용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자 충청도로 내려가 집안의 묘지를 쓰는 경우가 늘었지만, 요즘도 마을 주변에 묘지를 쓰는 사람이 드물게는 있다고 한다.

[종중의 큰 행사로 자리 잡은 시제]

금천강씨의 시제는 종중에서 치르는 행사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구름산 기슭에 있는 선산에는 금천강씨 모든 지파(支派)가 다 모여 시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음력 10월 15일에 구름산에서 시제를 지냈지만, 1990년대부터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시제를 지내고 있다. 10월 두 번째 일요일에는 충청남도의 대현리로 내려가서 시제를 지내며, 세 번째 일요일에는 각 지파들의 시제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강감찬 장군의 시제는 양력 10월경 관악문화원과 관악구청에서 매년 날짜를 정해 금천강씨 종친회에 통보하면 종친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낙성대에 가서 지낸다.

강감찬 장군의 묘소는 현재 정확하게 그 장소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63년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國仕里)에 묘소가 있다는 말이 있어 문화재위원과 금천강씨 종친회에서 찾아가서 발굴을 했으나 묘소의 지석(誌石) 판독이 어려워 강감찬 장군의 무덤이란 확증을 얻지 못했다. 그 후 서울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가 강감찬의 생가 터이며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사리탑식 3층 석탑이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그곳을 성역화하게 되었고, 1974년부터 낙성대에서 시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금천강씨 종친회와 청년회]

금천강씨 선산의 벌초는 1990년 이전에는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날짜를 정했으나 그 후로는 문중 청년회에서 벌초를 도맡아 하고 있다. 금천강씨 종친회 사무실은 현재 능촌노인정 부근 대로변에 있다.

종친회의 운영 자금은 현재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오는 건물 임대료를 가지고 사용한다. 과거에는 종중의 땅 논 다섯 마지기에서 나오는 쌀 한 가마니로 시제 비용을 댔으나 요즘에는 건물 임대료를 받아서 제를 지내기 때문에 제물도 좀 더 푸짐하게 차릴 수 있다고 한다.

종친회는 회장과 부회장 2명, 이사 1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현재 회장은 강병근 씨인데, 회장의 임기는 4년이다. 회의는 일이 있을 때 수시로 이사회를 소집해서 한다. 정기적인 회의는 시제가 임박한 음력 10월경에 하며, 이때 예산 결산 보고도 하게 된다. 금천강씨 종친회가 현재와 같은 조직으로 유지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현재의 노년층들에 의하면 자신들의 유년기 때도 이렇게 어른들이 종친회를 유지했다고 한다.

종친회에서 하는 가장 큰 행사는 시제를 지내는 일이다. 그 밖에도 종중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는데, 1997년 10월 2일 해군에 강감찬함이 배치되면서 종중에서는 강감찬함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함대를 방문하고 있다.

금천강씨 종가(宗家) 는 아방리[능말]에 있었으나 오래 전에 외지인에게 팔아서 그 자리는 이미 창고가 된 지 오래다. 종손 역시 경기도 수원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아방리[능말]의 금천강씨 집안 어른들은 예전 종가 터에 종택과 사당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보제공]

  • •  강진근(남, 1938년생, 노온사동 주민, 금천강씨 종친회 고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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