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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67
한자 李宗遠
영어음역 I Jongwon
이칭/별칭 이원중(李元仲),이종운(李鐘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동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옛 시흥군 서면 소하리]
성별
생년 1864년연표보기
몰년 1940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종원(李宗遠)[1864~194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이원중(李元仲) 또는 이종운(李鐘雲)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7일 밤 아들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순사보 최우창 등에게 체포되어 노온사리(老溫寺里)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이 사실을 같은 동네의 청년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 등에게 알렸다. 이 일로 다음 날 아들 이정석 구출 사건과 연계되어 지역에서 3월 28일 야간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종원최호천을 찾아가 아들이 잡혀간 사실을 말하며 빼내 줄 것을 부탁하자, 최호천·윤의병 등이 주민 200여 명을 이끌고 노온사리 경찰 주재소로 몰려가 전날 체포된 이정석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 구내와 보통학교 뒤편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200여 명의 군중은 돌과 벽돌로 무장하여 주재소를 포위하고 이정석의 석방을 외치며 게시판과 기물을 파괴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종원은 1919년 5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다시 상고하였다. 8월 30일 고등법원에서 다시 대구복심법원에 이관(移管)되어 12월 19일 벌금 30원(圓)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1992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대통령 표창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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