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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인조묘정배향교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477
한자 李元翼仁祖廟廷配享敎書
영어의미역 King Hyojong's Document of Memorial Service for Yi Wonik at King Injo's Shri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동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0월 16일연표보기 - 이원익인조묘정배향교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원익인조묘정배향교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교서
관련인물 이원익[1547~1634]|효종|채유후[1599~1660]|민유중[1630~1687]
용도 관공문
발급자 효종
수급자 이원익
발급일시 1651년연표보기
소장처 충현박물관
소장처 주소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5-2[오리로347번길 5-7]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공신 이원익(李元翼)의 배향 교서.

[개설]

「이원익 인조묘정 배향교서(李元翼 仁祖廟廷 配享敎書)」는 1651년(효종 2)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을 인조의 묘정에 배향한다는 내용의 효종이 내린 교서다. 인조와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발탁함으로써 흉흉한 인심을 수습하고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원익은 광해군 대에 인목대비의 유폐에 반대하다 유배된 인물로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공신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명망이 높았다.

따라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국왕에 오른 인조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신흠(申欽),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의 반정 공신과 함께 인조의 묘정에 배향된 것이다. 2009년 10월 1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이원익의 종손 이승규(李升圭)가 설립한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발급경위]

이원익은 자손들에게 시호(諡號)를 청하지 말도록 유언했으나, 1644년(인조 22) 4월 공조판서 윤휘(尹暉)의 발의로 시호 논의가 처음 제기되었다. 이후 1651년 조경(趙絅)이 시장(諡狀)을 작성하여 6월에 시호가 내려졌는데, 배향 교서의 발급 일자도 같은 해 6월 30일자로 되어 있으므로, 시호 논의와 인조 묘정의 배향 논의가 맞물려 함께 추진된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이원익인조묘정배향교서의 크기는 가로 88.5㎝, 세로 364㎝이며, 필사본이다. 남인인 채유후(蔡裕後)[1599~1660]가 짓고, 서인인 민유중(閔維重)[1630~1687]이 글씨를 썼다.

[구성/내용]

배향 교서의 일반적인 서술 원칙에 따라 수급자인 이원익의 관직명과 함께 그의 인물됨 및 공적 등을 서술하였다. 가령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것처럼 가냘프나 관직을 맡으면 늠름하여 범하기 어렵고, 말은 입에서 나오지 못할 것처럼 수줍으나 일을 만나면 패연히 여유가 있다.”와 같이 『소학(小學)』의 구절로 그의 인품을 묘사하였다. 그의 공적으로는 선조 대 임진왜란의 국가적 위기에서 중흥에 일조하였고, 광해군 대에 인륜을 바로 세운 점을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원익인조묘정배향교서는 교서(敎書)의 원본이 현존하는 사례가 희소한 데 비해 효종 대에 발급된 고문서로서 교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이원익에 대한 당대의 인식과 평가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이자, 민유중의 글씨를 이해하는 데도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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