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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041
한자 民俗
영어공식명칭 folklor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광명시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광명의 민속]

민속은 신앙, 의례, 놀이, 세시풍속 등 삶의 다양한 모습에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민속에는 그 지역만의 생태 환경 및 역사적·사회적 조건,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내재되어 있어 지역 생활사에서 갖는 의의가 크다. 여기에서는 도시화가 되기 전 광명 지역 토박이 주민들의 촌락 생활을 통해 조사한 신앙, 의례와 놀이, 세시풍속 등에서 보이는 지역적 성격과 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민간신앙]

광명 지역에서는 토박이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금도 가신신앙이 행해지고 있다. 광명 지역에서 가신으로 모시는 신은 성주, 삼신, 조왕, 터주, 업, 대감 등이 있다. 성주는 안방이나 대청의 대들보, 삼신은 안방이나 안방 다락의 주머니나 바가지로 모셔지며, 부엌에는 조왕, 장독이나 뒤꼍에는 터주가리와 업양가리, 광에는 대감항아리가 모셔지며, 대감항아리를 모시지 않고 마루에 성주항아리를 모시는 집도 있다. 동제는 대부분 자연 마을에서 행하여졌으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마을에서 단절되어 2021년 현재는 식골, 노리실, 양지편, 자경리에서만 행하여진다.

광명 지역 마을 신의 신격은 산신이 많으며 제의 명칭도 산신제가 많다. 이것은 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생태적 환경과도 관련이 깊으며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산신 신앙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제의는 주로 10월에 많이 행해지며 제수 비용은 동민들이 갹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제의의 주관은 만신이 주관하는 형태와 제관이 주관하는 형태, 만신과 제관이 합동으로 하는 형태가 있다. 제의 절차는 만신이 주관하게 되면 무속식, 제관이 주관하게 되면 고사식이 된다.

동제가 단절된 주요 이유는 도시 근교 지역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 마을이 파괴된 영향이 크다. 자연 마을이 더 파괴되기 전에 광명시에서 동제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러한 대책이 없다면 차후 수년 후 광명 지역 동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며, 그때 광명시 향토문화유산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광명 지역의 무속신앙은 주민들의 생활 문화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영위되어 왔다. 최근에는 많이 행해지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주민들은 장례 때 만신을 불러와 자리걷이를 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오늘날 제관이 제의를 주관하며 고사식으로 하는 마을에서조차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신에게 제의를 의뢰하였다는 조사 내용이 나온다.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경기도 지역에서 도당굿을 많이 하였는데 광명 지역 역시 도당굿이 전반적으로 행하여졌다. 광명 지역에서는 무당을 ‘만신’이라고 한다. 만신들은 주택가에 거주하며 주민들의 길흉화복을 예언해 주고 화를 면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방도를 일러 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였다. 도시화가 되기 전에는 만신들이 주로 촌락에 거주하였는데 근래에는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의례]

1. 출산

출산과 관련한 광명 지역의 생활 풍속을 살펴보면, 아이가 없는 집에서는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머니께 기원을 하는데, 인근의 안양 삼막사 칠성각에 가서 비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학동[법정동] 노리실장터말 사이에 삼신우물이 있어서 외지에서도 찾아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출산이 임박하면 방에 짚을 깔고 소독한 가위, 실, 소창, 포대기, 대야 등을 준비하였을 정도로 대부분 가정에서 아이를 낳았다. 난산일 때는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의 치마를 임산부에게 덮어 주기도 하고 방문을 열어 놓기도 하였다. 아이가 잘 나오라고 산모에게 삶은 달걀을 먹이기도 하였다. 주로 집에서 출산하거나 산파가 출산을 돕기도 하지만, 1970년대 광명사거리 지역은 서울과의 교통이 발달되어 있었고, 현대식 상가와 상가 시장이 조성되어 도시화가 진행되었기에 각종 병원과 산부인과가 있었다.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에는 ‘삼신상’이라고 하여 밥 세 그릇, 미역국 세 그릇을 차려서 아이 머리맡에 두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백일에는 흰무리, 밥, 미역국을 차려서 백일잔치를 하였고, 돌에는 수수팥떡, 흰무리, 송편 혹은 인절미, 무지개떡 등과 돌잡이 물건을 준비하여 돌잔치를 하였다. 이때 이웃에게 떡을 돌렸다.

2. 혼례

1970년대 이전에는 혼례식을 가정에서 주로 하였다. 물론 1940년대 후반에 이미 영등포에 예식장이 문을 열었으며 주민들 중에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한 사례도 드물게 있었기에 일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친영을 갈 때 경기도 일대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잿꾸러미라고 하여 신랑에게 재를 뿌리는 풍속이 있었는데 광명 지역에서도 널리 행하여졌다.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가면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왼발을 부뚜막 위에 올려놓게 한 다음, 바가지에 국수를 담아 수수깡으로 만든 젓가락으로 먹인다. 이 풍속 역시 경기도에서는 널리 행해지던 풍속이었다. 혼례는 주로 농번기를 피하여 추수 후에 하며 마루에 초례상을 차렸다. 신부가 신랑 집에 와서 가마에서 내리면 솥뚜껑을 방문 앞 마루에 엎어 놓고 신부의 손에 숟가락을 한 줌 쥐여 주어 솥뚜껑 위에 떨어지게 하였는데, 액과 살을 막기 위한 속신이었다. 신부가 온 후 며칠이 지나면 대청에서 조상님께 사당 차례를 지냈다. 1960~1970년대 타지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경우 택시를 대절하기도 하였다.

3. 장례

장례 때는 손님 접대를 위하여 가마솥에 육개장을 끓였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임종 후 수세를 하고 나면 사자상을 차린다. 키나 다라이에 밥과 국을 각각 세 그릇 넣고 망자의 고무신도 올려놓고 상여가 떠날 때까지 둔다. 사자상에 올리는 국은 뭇국이나 배춧국 등 시속에 따라 준비하였다. 염을 할 때는 창호지로 고깔 일곱 개를 접어 시신의 품속에 넣는다. 성복제에는 편을 올린다. 호상일 때는 상주를 상여에 태워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풍속도 있었다.

관을 방에서 내올 때는 사방 네 귀퉁이에 닿게 하고 문 앞에 바가지를 두어 밟고 지나간다. 상여가 갈 때는 선소리꾼이 요령을 들고 뒤에서 한 사람은 북을 치고 간다. 장지에서 내려와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그때부터 삼우제 사이에 자리걷이를 한다.

또한 마을마다 공동 상여를 이용하여 장례를 지냈는데, 아방리사들, 노온사의 공동 상여는 사택말이라 불리던 온신초등학교 뒷편과 목감천변 사이의 공동묘지에 있다, 시멘트와 슬레이트 지붕 형식으로 개량한 상여집이 남아 있고, 당시 사용하던 상여가 해체되어 상여집 안에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 마을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상여와 묘지는 사라졌지만. 원광명~노온사동 사이, 사택말, 장터말 등에 마을 단위의 매장지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상여집도 사택말, 장터말 등에 남아있다.

자연 마을에서는 지금도 마을 주변에 선산이 있어서 음력 10월에 시제를 지낸다. 장터말 파주염씨(坡州廉氏) 집안의 시제 음식은 지금도 옛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이 지역 제례 음식을 연구하는 데에 가치가 높다.

광명 지역에서 조선 시대 불천위 제사를 하사받은 인물은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분성군(盆城君) 김응수(金應壽)이다. 근래 이원익 종가에서는 불천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김응수 종가에서는 매년 후손들이 모여 지내고 있다.

[놀이 및 세시풍속]

광명 지역의 자연 마을에서 노년층이 어린 시절 놀던 놀이는 남자들의 경우 자치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탄피 따먹기, 풀피리 불기, 제기차기, 굴렁쇠, 딱지치기, 찜뽕,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바람개비놀이, 연날리기, 비석치기[비사치기], 깡통차기, 병정놀이, 엔또스, 윷놀이, 불싸움, 진뺏기, 풀쌈, 가마놀이, 다리세기 등으로 조사되었다. 여자들의 경우 그네타기, 고무줄놀이, 땅뺏기, 오자미놀이, 실뜨기, 공기놀이, 사방치기 등이었다. 이들 놀이 중 일부는 요즘 아이들도 하고 있으나 대부분 지금은 행해지지 않는다. 정월 대보름 때면 목감천을 사이에 두고 노온사 지역과 시흥시 과림동 쪽 마을 간에 투석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오늘날은 아파트나 주택가의 놀이터 혹은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데 이러한 도시 환경에서 하는 놀이로는 그네를 이용한 바이킹, 잡기놀이[술래잡기], 지탈놀이, 얼음땡, 정글짐, 긴줄넘기, 공기놀이 등이 있다. 성인들의 경우 낫치기, 고누, 골패, 엿치기, 비녀 돌리기 등이 있다.

[집단 놀이]

도시화가 되기 전 광명 지역의 집단 놀이로는 아방리 농요와 줄다리기가 대표적이었다. 농업 생산에서 기계화가 되기 전에는 모든 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특히 모심기와 같은 일은 공동 노동이 필수였다. 집단으로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가 발전한 것이 농요이다. 학온동 아방리소하동 등지 하천가에는 넓은 벌판이 있어 농사철에는 어김없이 두레패에 의해 풍물놀이가 행하여지고 농요가 불렸다. 아방리 농요는 지역 주민과 광명시의 노력으로 복원되어 2007년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 나간 적도 있다. 두레패를 통해 전승되던 농요나 두레놀이 등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장에서는 더는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아방리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여졌던 줄다리기 역시 1990년대 이후 중단되었다가 아방리 민속보존회가 설립된 후 매년 아방리 줄다리기 발표회를 갖고 있다. 매해 절기마다 반복되는 세시풍속인 설과 추석의 차례, 성묘, 시제 등 일부는 현재도 행해지고 있지만 농경 및 촌락을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세시풍속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광명시민체육관 운동장에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광명농악대축제에서 광명 지역 농악 동아리들의 공연과 아방리 농요, 줄다리기 등이 행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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